방콕은 태국의 수도이며 대부분의 국제 항공기가 태국에 처음 도착하는 곳이고 태국 국내 여행의 중심지입니다. 1천 1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거주하거나 일하고 있기 때문에 면적도 넓지만 복잡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호텔과 호텔의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방콕 내에도 수 많은 관광지가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시내 관광지에 대한 링크를 통해 세부적인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콕은 지리적으로 하루 또는 며칠씩 투자하여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도 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관광지들의 중앙에 있습니다. 방콕에서 가까운 유명 관광지로는 롭 부리(Lop Buri), 여름 별궁(Summer Palace), 아유타야, 칸차나부리의 크와이강(Kwai River)에 있는 버마 철도(Burma railway), 후아 힌(Hua Hin), 남서부 해안, 파타야(Pattaya), 남동부 해안 등이 있습니다. 역시 왼쪽에 있는 이런 관광지들에 대한 링크를 통해 세부적인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콕 주변 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위해서 도시의 역사와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이유, 수로의 위치와 건설 이유 그리고 강의 기능 등을 아래에 요약했습니다.
1557년에 아유타야의 타마라차(Thamaracha) 왕은 방콕을 아유타야 왕국의 출입항으로 정합니다.
이후에 나라이(Narai) 왕이 프랑스 기술자들을 시켜 강의 동쪽과 서쪽 둑에 위차이옌(Wichaiyen) 요새와 위차이프라싯(Wichaiprasit) 요새를 짓게 합니다.
이 두 요새를 합쳐서 방콕 요새(Bangkok Forts)라고 불렀습니다. 두 요새 사이의 강 아래에는 커다란 쇠사슬이 늘어져 있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샴(Siam)에 불법적인 배들이 출입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1542년에도 해상 교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서 방콕노이(Bangkoknoi) 수로의 입구에서 방콕 야이(Bangkok Yai) 수로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수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챠오 프라야(Chao Phraya) 강의 흐르는 방향이 바뀌었고 새로 건설한 수로가 강이 되고 원래 강이었던 곳이 수로가 되었습니다.
1767년에 샴(Siam)과 아유타야가 버마에 의해 약탈당한 후, 탁신 장군(General Taksin)이 서쪽 둑의 돈 부리(Thon Buri)를 샴(Siam)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습니다. 돈 부리(Thon Buri)는 당시에 항구로 들어오는 중요한 길목이었고 요새화가 잘된 곳이었습니다. 1773년에는 탁신(Taksin) 왕이 도시를 재정비하도록 명하고 그 이름을 크렁 돈부리(Krung Thonburi)로 부르게 했습니다.
아유타야는 1767년까지 샴(Siam)의 수도였고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반대편인 강 동쪽의 둑에 있던 라타나코신(Rattanakosin)은 1557년부터 아유타야 왕국(Ayutthaya Kingdom)의 통관항이었습니다.
이곳을 방 콕(Bank Kok)이라고 했습니다.
방콕(Bangkok)은 샴 왕국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이야기는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방콕의 챠오 프라야(Chao Phraya) 강의 서쪽 둑에 건설된 돈 부리(Thon Buri)에서 번성했던 탁신(Taksin) 왕과 첫 번째 왕국의 시대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라마 1세(Rama 1)부터 라마 3세(Rama 3)까지 평화의 시대(The Era of National Peace)였던 1782년부터 1851년까지 라타나코신(Rattanakosin)이 건설되던 시대입니다. 1851년에서 1932까지의 시기를 개혁 시대(Reformation Era)라고 하며 정부의 시스템이 변화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바로 세 번째 시기이고 1932년 즉 라마 6세(Rama 6)가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현재까지를 민주 시대(Democratic Era)라고 하며 마지막 네 번째 시기입니다.
방콕의 디자인, 시내의 동상, 강 그리고 수로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방콕에 있는 예술품과 동상 등의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영향, 종교적 영향 그리고 민족적 영향을 모두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